『알고 있습니까? 사타케오토지로우를』
(시만토시 타케시마출신・향토의 위인 사타케오토지로우이야기)책의 텍스트
[page 1]
어느 지역에도 휼륭한 삶을 산 사람이 있습니다. 시만토시에도 많은 휼륭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 타케시마 출생의 인물을 소개합시다.
나카무라로부터 시타타항으로 사는 도중, 타케시마의 입구의 도로 옆(①) 에,
타케시마초등학교의 아동이 만든 사타케오토지로우의 탄생지라고 기록되어 있는 간판이 세워져 있습니다(②).
또, 거기로부터 75미터정도 떨어진 먀야무라씨의 집의 정원에는 사타케오토지로우의 생가라고 쓰여져 있는 휼륭한 기념비도 세워져 있습니다(③).
[page 2]
사타케오토지로우는 지금으로부터 150년전에 미야무라집안의 네번 째 남자아이로 태어나서, 7세 때에 나카무라의 사타케 집안에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잠시 뒤 사타케의 부모와 이별하는 일이 되었고, 오토지로우는 고통스럽고 아픈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한 소년기의 경험으로부터, 어린 아이를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고 싶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13세 때, 불쌍한 오토지로우를 차마 볼 수 없었던 낳아준 부모는,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타케시마에 불러들였습니다. 6살도 나이 어린 아이들과 같은 초등학교 1학년생이 되었던 것이지만, 공부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15세 때, 슬슬 농업을 생각하도록 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오토지로우가학교에 가는 일을 그만 두게 했습니다. 오토지로우는 매우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슬퍼하고, 몸도 약해 갔습니다.
고민한 끝에, 신에게 배우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타케시마신사(⑤)에 참배하러 갔습니다. 3일간 참배한 저녁,
「신이 들어가 있는 문을 열어보자, 안에는 아무도 들어가 있지 않다.」라는 꿈을 보았습니다. 무슨 일인가라고 생각한 결과,(신은 다른 사람을 의지해서는 안된다. 확실히 공부해서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길을 바라보라.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라고 깨달았습니다.
[page 3]
18세 때, 약해 가는 오토지로우을 보고, 아버지는 농업을 가르치는 일을 단념하고, 공부하는 일을허락했습니다. 기뻤던 오토지로우는 공부에 힘을 내어, 초등학교 선생으로서 고향의 초등학교에서 일해서부터 23세 때에 동경의 초등학교에 가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은혜입지 못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져, 의사가 되고자 의학교에 입학했습니다. 29세에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1년간 병원에서 근무한 후, 가나가와현에 병원을 개업했습니다(⑥).
돈이 없는 사람으로부터는 돈을 받지 않는 것 같이, 어려운 사람을 많이 생각하는 의사이었습니다.
어느 날, 어린아이를 데리고 환자가 왔습니다. 상태가 좋지 않아서 바로 입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입원 중에 어린아이를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때문에 곤란했습니다. 그것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오토지로우는, 그 아이를 맡아서 보살펴 주는 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토지로우는 상처와 치료하는 것만 아니라, 어렵게 방문한 사람은 누구든지 돕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윽고 오토지로우는 병원을 그만두고, 카마쿠라보육원(⑦)이라는 시설을 만들고,
갓난아이를 중심으로 은혜를 입지 못한 사람을 돌보는 일에 전념합니다. 아이들을 맡을 때는 가족으로서 받아들여, 자신의 자녀들 같이 여겼습니다. 그것이 오토지로우가 시작한 보육원의 큰 특징입니다.
[page 4]
맡은 아이들이 증가하는 일에 동반해서 대단히 어려운 것은 생활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오토지로우의 열의에 마음이 움직여 진 이타가키 타이스케(板垣退助)랑 히토 히루부미(伊藤博文) 을 비롯해, 엄청 많은 분들로부터 원조를 받는 일이 되었습니다.
또, 오토지로우는 자신의 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 조선, 대만에도 불행한 어이들을 돕기 위해서 힘을 쏟아 부었습니다.
오토지로우는, 지금으로부터 74년전에 76세에 죽었습니다만, 죽으면 부모 곁에 자신의 무덤을 두는 것을 바란다고, 친척에게 부탁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져, 부모의 무덤 곁에 그 무덤이 만들어져 있습니다(⑧).
많은 은혜를 입지 못한 아이들을 키웠던 오토지로우는, 나라로부터 표창을 받았습니다. 생가의 돌비석은 오토지로우의 휼륭한 업적을 기리며 세워졌던 것입니다.
오토지로우가 죽어서도 오토지로우가 시작한 일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 온 장소를 선택하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장소는 자신이 바라는 장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 자신의 하고 싶은 일을 목숨을 걸고 하고 있다면, 반드시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끝>
톱 페이지